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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마을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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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옥신마을

선옥신마을 이미지입니다.

선옥신 마을은 충북혁신도시 예정지의 마을 중 최고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옥동초등학교에서 두촌 삼거리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오른쪽에 상산제 표지석이 나온다. 이 표지석 맞은편에 선옥신 마을의 마을회관이 보인다. 마을 회관 앞에는 이 지역의 옛 명칭인 ‘두레지’의 유래비가 서 있고, 그 앞의 도로 건너에는 ‘새농’이라는 지명을 가진 넓은 들이 펼쳐진다.선옥신 마을은 조사당시 모두 19가구였는데 이 중에는 이미 이주하여서 빈 집들도 다수 있었다. 집들은 몇몇 스라브 주택을 제외하고 대부분 슬레이트 또는 양철지붕에 토담으로 지어진 오랜 된 집들이다.

마을 주민의 주요 생산활동은 벼농사이다. 그러나 벼농사로는 생계가 어려워 10여 년 전부터 조금씩 수박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담배가 이 지역에 주요 밭농사였으나 지금은 전혀 짓지 않는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이 흙이 좋고 홍수나 가뭄 등의 자연재해가 적어 큰 어려움 없이 농사일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각종 농사비용이 증가하면서 몇몇 주민들은 농사를 포기하고 공장이나 경비일에 나가고 있다. 마을 앞 도로는 70년대 새마을 운동 시절에 포장한 도로로 두촌 삼거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마을에서공동으로 사용하는 농기계보관창고는 10여년전 국가보조금과 마을 기금을 합하여 지었다. 마을 회관 옆에는 예전에 공동 빨래터로 이용하였던 우물이 있었는데 집집마다 지하수를 파서 별도의 수도이용을 갖추면서 사용하지 않다가 그 마저도 도로 포장으로 인해 없어졌다. 마을회관은 처음에 정부보조금 2,000만원과 마을기금을 합쳐 방 두간 딸린 7평 정도의 건물로 지었으나 지금은 새로 지어져 노인정으로 이용되고 있다. 선옥신 마을에는 공장시설이 보이지 않는다. 이장님 말씀에 의하면 이 마을의 위치가 석장리 저수지의 상류이어서 상수도 보호차원에서 공장입주가 허가되지 않는다고 한다.

연말에 마을의 정기총회가 열리는데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1년간의 예산을 결산하고 이장을 뽑는 등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한다. 이장의 임기는 2년이며 연임이 가능하고 보통은 추대형식으로 선출한다. 마을의 조직은 부녀회와 노인회 그리고 연반계(상조회) 등이 있다. 연반계는 원래 대화마을과 함께 하였으나 호구수가 많아지고 의견이 분분해지자 18년 전부터 따로 분리해서 운영되고 있으며 연반계의 기금을 마을기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마을 주민들이 매년 강원도와 남해안 등으로 버스를 대여해 마을단체여행을 다녀오거나 여름에 초평저수지나 주변의 계곡에 가서 물고기도 잡고 고기도 구워 먹으며 주민들의 결속을 다졌으나 혁신도시가 추진된 이후 지금은 유명무실해졌다.

상대마을

상대마을 이미지입니다.

상대마을은 두촌리의 선옥신 마을과 남천마을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다.마을은 포장된 도로를 기준으로 양쪽으로 나누어져 좌측에 강당말이, 우측에 차돌배기가 자리 잡고 있다. 강당말은 예전에 서당이 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옛날의 서당은 현재 민가로 쓰고 있으며 바깥에서 보면 거의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그 맞은편으로 집들이 보이는데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고려시대 안향의 제자들이 수학을 하였던 숭현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숭현사터가 나온다. 현재 이곳에는 외지 사람이 별장으로 집을 지어 이용하고 있다.마을 주민의 대부분은 벼농사와 고추, 깨, 콩 등의 밭농사를 주로 짓고 있으며 단지 3가구만이 수박농사를 짓는다.

마을회관은 10여년전 정부보조금과 연반계기금을 합하여 지었고, 마을회관 준공 이후 시계와 거울, 러닝머신 등은 덕산면에서 도움을 주었다. 마을에는 공동 우물이 2개 있었는데 집집마다 지하수를 파면서 모두 없어졌다가 지금은 하나만 복원되었다. 남아 있는 하나의 우물은 현재의 이장님이 복원하였는데 예전에는 집안에 우환이 있는 경우 개인적으로 샘고사를 지냈다고 한다.지금도 개인적으로 치성을 드린 흔적을 볼 수 있었다.마을의 조직은 노인회와 부녀회, 연반계가 있고, 연반계는 1년 이상 거주하면 무조건 가입해야 한다. 노인회는 65세 이상의 노인들로 2만원의 가입비를 내고 가입되게 된다.

남천마을

남천마을 이미지입니다.

남천마을은 두촌리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마을 입구에 돌로 만든 마을 표지석이 웅장하게 서 있다. 남천마을은 밖에서 보면 몇 채 되어 보이지 않지만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면 주변마을에 비해 결코 작지 않은 마을로 앞구레, 쪽샘골, 바깥말의 3개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515번 도로와 연결된 두촌 삼거리에서 상대마을로 가다가 우측의 마을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면 마을 회관과 노인정이 있는 ‘앞구레’가 자리 잡고 있다. 마을회관은 정부의 보조금과 마을 기금을 합쳐 지은 것으로 이곳에서는 매년 12월에 정기총회를 열어 3년 임기인 이장을 선출하는 등 마을의 현안들을 처리한다. 마을회관을 지나 쪽샘골쪽으로 올라가면 왼쪽으로 꺾이는 ‘ㄱ’자의 조그마한 언덕이 나온다.

이 언덕길에서 선옥신 마을 방향으로 길을 따라 가면 두촌식품과 그 옆에 농기계 보관창고가 보인다. 농기계 보관창고는 마을 주민 중 일부가 자금을 모아 지은 것이다. 다시 쪽샘마을 쪽으로 약 10m을 이동하면 마을 주민들이 함께 이용했던 쪽샘이라 부르던 마을 공동 우물과 빨래터가 나온다. 이 우물의 이름에서 기인되어 이 마을을 ‘쪽샘골’이라 부른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에 모여 마을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빨래를 하면서 담소를 나누던 장소였는데 지금은 이용 하지 않고 있다. 이곳의 가구 수는 대략 8가구이다.

‘바깥말’은 앞구레 건너편에 있는 마을로 두촌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진입하는 도로를 따라가면 나타난다. 앞구레와 바깥말 사이에는 옛 한천초등학교 두촌 분교가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 중앙에 두촌교회가 위치하고 있다.

두촌교회는 40여년전 이곳을 개척하여 처음에는 천막을 치고 목회하다가 슬레이트 건물로 신축하였으나 10여년전 불이 나서 건물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목회자는 모두 4번 바뀌었는데 현재는 김용호 목사님이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이 바깥말에는 7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남천마을 주민들은 일반적인 농사이외에도 수박농사를 많이 하는데 남천마을에서 보다는 타지에서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다.남천마을에는 청년회와 부녀회가 있고 마을의 상조회인 연반계가 운영되고 있다. 겨울에는 마을 주민들이 외지로 여행을 가기도 했지만 혁신도시예정지로 선정된 이후에는 모두 없어졌다고 하며 조금씩 모았던 부녀회비나 마을기금도 지금은 모두 나누었다고 한다.이제 조금 있으면 주민들은 이 마을을 떠나야 된다. 일부 주민들은 주택공사에서 제공하는 이주지로 보금자리를 옮기는 사람도 있지만 이 마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에 땅을 사서 그곳으로 함께 삶의 거처를 옮기기를 원한다고 한다. 현재 남천마을에는 총 30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성비는 6:4로 여성이 많고 평균연령은 60세이다..

대화마을

대화마을 이미지입니다.

선옥신 마을 앞의 삼거리에서 왼쪽의 덕산면 방향 포장도로를 따라 언덕을 하나 넘으면 대화마을을 알리는 마을표지가 나온다. 여기에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오른쪽의 야산 밑에 13가구가 모여 사는 대화마을의 양지말이 자리 잡고 있다. 대화마을은 양지말, 음달말, 바리미골의 3개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다.이 마을은 모두 22가구에 약 5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마을 주민의 평균연령은 65세로 다른 마을에 비해 고령자가 많은 편이다. 주민들은 고령자가 많아 특수작물은 재배하지 않고 대부분 논농사와 참깨, 콩, 고추 등의 밭작물을 재배한다. 수박농사를 짓는 집은 1집뿐이다.과수원도 이 마을에선 찾아 볼 수 없다.

마을회관에서는 마을 노인들이 화투도 치고, 담소도 나누며, 그리고 마을에 대소사가 생기면 음식을 함께 해 나누어 먹곤 한다. 과거에는 마을 주민 중 1명이 생일날이 되면 마을 주민 대부분이 아침에 식사를 같이 하면서 축하해주었지만 혁신도시가 발표된 이후 이마저도 시큰둥해졌다.

마을의 조직은 연반계와 부녀회만 운영되고 있다. 청년회는 고령자가 많은 관계로 사라진지 오래고 부녀회도 활동이 뜸하다. 연반계는 원래 선옥신 마을과 공동으로 운영하였으나 18년 전부터 선옥신 마을과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마을에 상이 나면 타지에 나가 있는 자손들까지 불러 상을 치러 주는데 과거에는 불참시에 10만원의 벌금을 물리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벌금은 물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장은 추천을 통해 선출하는데 임기는 3~4년으로 정확히 정하지 않는다.

하석마을

하석마을 이미지입니다.

대화마을의 양지말에서 옥동초등학교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오른쪽에 하석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하석은 돌실마을의 한자표기로 동네에 돌맥이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석마을은 덕산면과 장암마을로 연결되는 도로를 기준으로 안쪽의 11가구만이 이번 충북혁신도시 예정지에 포함된다. 하석마을에는 다른 마을처럼 공장도 없고, 수박농사를 짓지 않으며, 가축도 기르지 않는다. 대신 사과농사를 유일하게 많이 하고 있다. 마을 주민 모두가 덕산과수영농조합의 조합원으로 작목반을 꾸려 함께 사과 과수 농사를 짓는다. 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돌실사과’라는 브랜드로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마을에는 샘이 하나 있는데 옛날에는 이 샘에서 무당이 마을사람과 함께 음식을 차려놓고 마을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마을 조직은 다른 어느 마을보다도 활발하다. 이장은 대체로 마을의 행정적 업무를 담당하고, 동계는 마을 주민 모두 가입되어 마을의 대소사를 주관한다. 나이 65세 이상이면 노인회에 가입이 되고, 결혼한 여성은 부녀회에 소속이 된다. 청년회는 장암마을과 공동으로 조직되어 있다. 과거에는 초평저수지 등으로 철엽을 자주 갔지만 지금은 잘 가지 않으며, 농한기에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 단체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하석마을은 건강체조로 대회에 나가 상을 타기도 하였는데 마을 주민들의 단합을 도모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 마을회관에는 당시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탔던 사진들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두성1리

두성1리 이미지입니다.

515번 지방도를 따라 두촌 삼거리에서 통동 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좁은 포장도로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약 300m을 가면 두성 1리와 만나게 된다. 두성 1리는 윗맹골과 새터로 나누어져 있는데 새터에는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으로 주민은 3가구만 거주하고 있다. 윗맹골은 마을의 중심 지역으로 28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마을회관은 마을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주민의 성비는 대략 5:5로 남성과 여성이 비슷하다. 이 두성 1리의 평균 연령은 약 53세로 다른 마을에 비해 젊은 편이다.

진천에서 본성리 쪽으로 가는 도로의 왼쪽, 즉 새터와 윗맹골 사이에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는데 이곳은 대부분 수박비닐하우스가 차지하고 있고 비닐하우스가 없는 밭에는 음성의 대표 고추인 청결고추가 많이 심어져 있다. 수박농사를 시작한 것은 약 15년 전으로 충북혁신도시 예정지내의 다른 마을처럼 두성리도 담배농사를 짓다가 수박으로 전환하였다. 수박 작목반을 조직해 함께 도우며 일을 하는데 20호 정도가 가입 되어 있다.

두성2리

두성2리 이미지입니다.

두성 2리는 안골, 감나무골, 웃말, 아랫말의 4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이 지역은 충북혁신도시 예정지내에서 공장시설이 가장 많은 마을로 현재 18개의 업체가 입주하고 있으며 이 중 가장 먼저 이곳에 입주한 업체는 1988년에 들어온 광주 하이바라고 한다.

두성 2리에는 공장시설을 제외한 개인은 모두 35가구가 살고 있다. 자연마을 별로 살펴보면 안골에 8가구, 감나무골에 4가구, 웃말에 14가구, 뒷말에 6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인구는 약 120여명 정도이고, 평균연령은 65세가 넘는다

마을의 공동시설로는 마을회관과 노인정, 보건소가 있다. 마을회관은 송은식씨가 땅을 기증하고 그 자리에 정부보조금과 마을기금을 합하여 지었다고 하며, 노인정은 2003년에 지었는데 마을간 거리가 있어 노인들이 왕래하기 불편하여 각 마을별로 하나씩 노인정을 세웠다. 보건소는 20여년전에 처음 생겼는데 최근에 조립식 구조물로 신축하였다. 안골에는 둥구나무 밑에 모두 7개로 이루어진 칠성바위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바위에는 ‘七星岩’이란 글자가 생겨진 것도 있다. 예전에는 둥구나무 옆의 도로에 놓여 있던 것을 이 도로를 시멘트로 포장하면서 한곳으로 모아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이 칠성암은 청동기시대 고인돌의 상석일 가능성도 있다. 과거에는 이 칠성암에서 칠월칠석이나 사월 초파일날 개인적으로 치성을 드리는 할머니도 있었다고 한다.

또 안골에는 샘이 1기 남아있다. 이곳에서도 예전에는 마을 공동 제사를 지냈으나 20여년 전부터는 마을 전체가 아닌 개인적으로 치성만 드린다. 이 샘의 물은 다른 곳의 샘과는 달리 물이 따뜻해 아낙들이 빨래를 할 때 손이 시리지 않아 좋았다고 한다.

마을의 조직은 청년회, 노인회, 부녀회, 우정회 등이 있고 상조회격인 대동계가 운영되고 있다. 대대동계의 가입조건은 마을에 1년 이상 거주해야 하고 신규회원은 쌀 1말을 내고 가입할 수 있다. 여느 마을 연반계와 마찬가지로 마을에 대소사가 있을 때 서로 도와주고 이때 나오는 돈을 모아 기금으로 사용하고 있다.마을에 전기는 71년에 처음 들어왔는데 전신주를 세울 때 마을 주민들이 각출해서 세웠다고 한다.